Introduction 학회소개

회장인사말

주민자치라는 유쾌한 반란으로 민주주의 새 지평 열어야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라는 두 개의 축이 균형감 있게 공존할 때 이상적으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체자치가 지방분권에 입각해 제도적으로 상당한 권한을 확보하며 꾸준히 발전한데 반해 주민자치는 아직까지 실질적 권한은 물론 이에 대한 실현가능성마저 답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읍면동을 행정계층에서 자치계층으로 바꾸되 주민자치에 맡기자는 획기적인 기획이 있었지만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현재 행정안전부)는 공무원의 반발과 동요를 변명 삼아 포기해 버렸습니다.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가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읍면동장이 주민자치위원을 위촉하고 시군구 의원이 당연직 고문을 맡아 명칭만 주민자치위원회였지 실제는 주민자치가 아닌 주민관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잘못 끼워버린 단추로 인해 주민자치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끔 현재의 주민자치회에는 주민도 없고 자치도 없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결국 이 땅에 주민자치라는 단어가 행정용어로 등장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로 잡히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주민자치회는 해당 지역 주민 모두가 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주민자치회에는 ‘주민’은 없고 ‘위원’만 존재합니다. 그나마 ‘위원’이라도 되어야 주민자치회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제한하였고 이마저도 시민단체가 실시하는 사전의무교육 이수로 또 다시 제한한 뒤 공개모집을 통해 추첨에서 당첨되도록 거듭 제한하였습니다. 사전의무교육-선정위원회심사-공개추첨-읍면동장위촉이라는 불합리하고 왜곡된 방식이 고착된 것입니다.

행정안전부는 그 어느 때보다 ‘자치분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주민자치회에 ‘주민’도 ‘자치’도 배제해 버린 만행을 저지른데 이어 시범실시 표준조례를 통해 시군구가 주민자치회를 주민 의사와 관계없이 지배할 수 있도록 내던졌습니다. 전국적으로 제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지역 사회에 동일한 규칙을 강요하고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부 시장·군수·구청장은 중간지원조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시민단체에 주민자치를 위탁해 주민자치 현장을 왜곡, 훼손시켰습니다. 권력형 기관이 되어 버린 시민단체에 의해 주민자치는 정치의 시녀이자 행정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만 것입니다. 이를 가능할 수 있게 해당 조례를 통과시킨 지방의회도 주민자치를 망친 공범입니다. 주민자치를 포괄적으로 위탁시키는 조례를 알고 통과시켰다면 무책임의 극치이며, 모르고 했다면 무지의 산물입니다.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는 주민자치회가 주민들의 회라는 것입니다. 특히 진정한 주민자치는 주민이 단순한 참여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핵심적으로 주도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역시 참여는 필수요소일 뿐 그것만으로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민이 주도하고 만들어가며 발전시키는 자치야말로 참다운 풀뿌리민주주의의 초석이자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근현대사를 거치며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민주주의 발전을 일궈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치’와 ‘분권’이라는 화두 앞에 ‘민주주의의 정체냐 새로운 도약이냐’라는 시대적 과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관치로 점철된 장애물을 넘어 주민에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자치가 가능하도록 다 같이 주민자치라는 유쾌한 반란을 통해 민주주의 실현의 새 지평을 열어갈 때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주민 모두가 회원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주민의 자치는 사람을 인격자로 만들어주고 마을을 공동체로 만들어 줍니다.

신명나고 멋있는 주민자치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넘실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진정한 자치와 분권 정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더불어 주민자치 실질화와 자치역량 강화를 위해 오늘도 주민자치 현장에서 노력하며 헌신하고 계신 전국 주민자치 가족 여러분께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전상직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