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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1062차 제95회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4-08 14:19:06 조회수 26

'공공성(公共性)'이란 무엇일까? 공적 그리고 사적의 의미, 국가-공동체-시장과 구분되는 공공성의 개념은 무엇일까? 그리고 공공성과 주민자치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민주주의, 주민자치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인 공공성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하는 자리가 '공공성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1062차 제95회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김동춘 전 성공회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가 발제, 그리고 김성민 건국대 명예교수,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지정토론자로 함께 했습니다.

발제를 맡은 이관춘 교수는 사이토 준이치의 저서 <민주적 공공성>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공공성에 대해 한나 아렌트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입장을 비교 소개하면서 주민이 자아를 실현하는 공간의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이 교수는 발제를 통해

- 아렌트와 하버마스의 공공성 이론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행위’와 ‘도구적 행위’를 비교했으며, 아렌트는 행위(action), 노동(labor), 제작(work)을 구별했다. 둘의 공통점은 똑같이 공공성을 말 이외의 힘을 배제한 담론의 공간으로서 규범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 하버마스는 공공권의 이상적 모습으로 합의를 형성해가기 위한 토의의 공간을 언급했다. 하버마스 토의 개념은 합의 산출이란 목적 외에 합의 형성 이면을 주목했으며 이는 기존 합의의 비판적 해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통용되어온 규범의 자명성을 확인하고 ‘토의’를 기존 권력관계를 반성하는 ‘공동의 학습과정’으로 보았다. 또 토의는 합의가 형성되는 과정임과 동시에 불합의가 새롭게 창출되는 과정이며 열린 토의가 의미 있는 이유는 합의되지 않는 곳에 공공의 주목이 향해지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의사결정의 오류 가능성(fallibility)을 중시한 것이다.

- 아렌트의 공공성은 두 가지 차원 즉 ‘현상의 공간’ 및 ‘세계’가 있는데 먼저 ‘현상의 공간’으로서 공공성은 사람들이 행위와 논의에 의해 서로 관계하는 지점에서 창출되는 공간이다. ‘현상의 공간’은 공공적 공간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교환 불가능한 방법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장소다. ‘누구’라는 정체성은 개인의 행위나 말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말을 거는 타자의 응답으로 비로소 생성되는 것으로 정체성은 타자의 존재를 요구한다. 이 ‘현상의 공간’은 타자를 하나의 ‘시작’(행위, 말)으로 여기는 공간으로 타자를 유용성 여부로 판단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자로 처우하는 공간이다.

- 공공적 공간에서 담론의 의미는 다름을 서로 분명하게 하는 것으로 하나의 합의를 향해 수렴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의견’은 판단을 타당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과는 다른 타자의 관점을 고려하는 것이다. 타자의 입장에 서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적인 사고의 폭'이 우리 판단에 타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지정토론자인 김성민 교수는

- 아렌트는 외로움(loneliness)와 고독(solitude) 개념을 비교하면서 내 안에서의 사유를 강조한다. 외로움 속에서 나는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있게 된다. 고독 속에서 나는 내 자신과 함께 있으며 하나인 내 안에서 둘(two-in-one)을 이룬다. 하나 안에서 둘이 되는 것은 스스로 대화를 하는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모든 사유는 나와 나 자신의 대화이며 이것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대화 안에서 나는 다른 사람과의 접점을 잃지 않는다. 사유 가운데 나의 동료 인간들이 이미 나 자신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지정토론자인 박정하 교수는

- 공통의 이익은 사적 이익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 이익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사적 이익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동선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것을 말한다면 공공선은 구성원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모두가 마땅히 추구할 만한 가치를 가진, 그래서 추구해야만 할 좋음을 말한다. 함께 삶을 유지하는 공동의 삶에서 공리주의적 판단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치의 문제는 공공선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아렌트적 의미에서 정치와 사회를 구분할 때 공리주의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까지는 가능하지만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의 영역에서는 무력한 셈이다.

 

지정토론자인 신진욱 교수는

- 공공적인 것은 단지 지금 현재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앞으로 이 세계에 오게 될 사람들에게 관련되는 일을 포함한다. 동시대 뿐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는 영속성, 즉 개별자의 생물학적 유한성을 넘어서는 역사적 영속성을 갖는 사안들은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여러 의미의 공공성을 현실에서 어떤 제도와 실천에 의해 구현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자세한 내용 월간 <주민자치> 기사를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월간 <주민자치> 기사보기 >> http://www.citizenaut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