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치학회는 2006년 창립한 현장 중심형 학술단체로서
주민자치 실질화를 통해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정치학회 행사장에서 주민자치를 주제로 대화하는 중에 김부겸 장관께서 “시범실시 한 주민자치회도 성과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가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기획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획을 했다면 보기 좋게 성공을 했을 것”이라고 하자 장관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성공하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한국정치학회 중진학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다. 주민자치는 ‘사회적인 원리’로 작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관료들이 ‘행정적인 원리’로 설계해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주민들에게 공무원처럼 일하라고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행사장에 있던 정치학계 중진들께서도 ‘지역 사회에는 행정력이 과잉 작동하고 정치력과 사회력은 과소화돼 주민자치회가 지역 사회의 지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행정서비스 하청기구로 전락해 읍·면·동장의 전횡 하에 놓이게 된다’는 데 동의했다.
결론적으로 지역 사회가 주민자치회를 행정부의 관할에서 빼내 입법권과 조직권 그리고 재정권까지 분권해야 비로소 주민자치가 출발이라도 할 것이라는 기본을 함께 확인했다.


이번엔 한국의 주민자치정책에 대해서 정책입안의 오류들을 짚어 보도록 하자.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김진홍 사무관이 실무를 담당해 추진했다. IMF 사태 이후 소위 ‘구조조정’의 열풍이 몰아닥칠 때, 정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읍·면·동사무소를 폐지하고,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하겠다는 매우 과감하고도 선진적인 정책이었다. 성공했다면 한국 행정과 자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 상실을 우려한 공무원들의 동요와 주민자치 여건의 미비로 인해 읍·면·동사무소는 폐지 대신 축소하고, 읍·면·동에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읍·면·동 지역에 행정기관인 읍·면·동사무소를 축소했지만, 그대로 두고 새로이 주민자치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은 주민자치정책에 대해 축적된 경험도 없고 선진의 사례가 지혜로 확보되지도 못해 주민자치가 싹이 트기에는 토양이 척박한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행정자치부의 주민자치정책 기획담당 사무관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에 주민자치 실질화 정책토론회 후에 추미애 국회의원이 “매우 중요한 주민자치 토론회에 행자부는 김지순 국장이 직접 나오지 않고 왜 과장님이 나오셨나요”라고 질책하자 김진홍 사무관께서 계면쩍어하면서 혼자서 주민자치를 추진하는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당시 토론회의 패널에는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최열 경실련 사무총장, 장원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등이 참가했다.
읍·면·동 지역에는 당초에 폐지하려고 했던 읍·면·동사무소가 그대로 남아있게 됐고, 읍·면·동을 대체하려던 주민자치회도 남아있게 되는 상황에서 행정자치부는 방향을 주민자치 중심에서 읍·면·동 중심으로 전환한다.

 

 

읍·면·동을 대체하려던 주민자치회가 갑자기 읍·면·동장이 관할하는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위원회로 기능이 전환되고 지위가 격하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 주민자치사에서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다.
먼저 주민자치회의 주민기능을 없애 버렸다.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에 묶어두되 그것도 심의만 하도록 국한시킨 것이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투입부터 산출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임무는 계획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것, 말하자면 책임도 없고 지식도 없고 의지가 없어도 되도록 만들었다.
경영학적으로 관찰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지향의 낭비적인 조직이다.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는 오류다.
주민자치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주민자치위원회는 위촉권자인 읍·면·동장이 주민자치가 아닌 행정편의로 위촉해 운영하고, 행정편의로 평가해, 주민자치가 아닌 행정편의 위원회로 조직되고 운영돼 왔다. 편법이 판을 쳤던 것이다. 그런데도 행정자치부는 눈을 감았다. 적어도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장의 지배가 아니라, 주민의 지배가 되도록 해야 했다.

 

 

적어도 주민자치센터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자치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했다.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지역 사회를 파악하고, 운영하면서 주민들도 접촉해 주민자치센터가 지역 사회의 네트워크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 당시의 행정자치부는 주민을 불신해 주민자치센터도 맡기지 못했다. 바꾸어 말하면 주민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주민들에게 주민자치센터를 맡길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지 못했다.
필자가 분노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주민자치의 원론만 주장하고 정책에 대해서 제대로 지적해주는 연구보고서가 극히 적다는 것과 국책연구원들이 주문형 보고서로 생산적 평가가 결핍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읍·면·동장의 주민자치회 무력화에 시·군·구 의원이 가세하고 일부 주민자치위원도 가세해 주민자치에 주민의 참여를 인위적으로 막고 있어서 주민자치의 발전이 구조적으로 저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찬동 교수는 1999년 주민자치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는 일본 제도를 벤치마킹하면서 제도 수립 시 크게 잘못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센터의 제도적인 측면에서, 운영의 경험에서 이제는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주문형 보고서들로 주민자치 실패의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실수는 경험으로 되살아나지만 실수를 경험으로 살리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다.
주민자치정책의 경험 속에서 공과를 가려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살리면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한번 잃은 소를 또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는 이주노 사무관이 설계를 담당했다. 현재의 읍·면·동을 대체할 수 있는 조직으로 주민자치회를 가설계해서 시범실시하라는 것이 행정체제개편에 관한 법률에 나타난 요구였다. 1999년 정부 구조조정으로 추진한 읍·면·동 체제 개편과 동일한 요청이었다.

 


1999년에 주민자치 경험이 전혀 없어서 일본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무지해 저지른 과오와 무리하게 저지른 과오가 겹쳐 20년째 주민자치가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는 분명하게 읍·면·동을 폐지하고 대체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를 설계해 시범으로 실시하라는 법률상의 분명한 명령이 있었다.
시범실시 주민자치회 초기계획을 보면,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의 자치회가 아니라 읍·면·동의 서비스 하청기구로 설계됐다. 하청기구면 어떠랴 싶지만, 계획을 입안하면서 ‘마을만들기’하는 시민운동가의 조언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 문제였다. 한국에서 마을만들기는 정부 예산의 하청사업에 불과하다. 그런 하청사업인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안목으로 수립한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역시 실패였다. 주민자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행정자치부의 고위직으로 담당관을 임명해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를 도왔으나 효력이 없었으며, 행정학 교수 중심으로 컨설팅단을 구성해 운영했으나 그것도 효력이 없었다.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의 처방으로는 백약이 무효했다. 왜 그랬을까.

김부겸 장관께서 ‘시범실시한 주민자치회도 성과가 없다’고 했을 때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기획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도록 기획했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주민자치 기획들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도 있고, 국내에도 있다. 다만 성공한 작은 기획들을 꿰어서 읍·면·동의 주민자치로 만드는 연구와 기획이 필요하다. 김찬동 교수의 지적대로 정책은 경로 의존성이 있다. 주민자치센터와 주민자치회는 전혀 다른 성격의 조직이다. 주민자치센터는 사회교육기관이고,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의 자치조직이다. 그런데도 주민자치센터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를 동일시하는 것은 결정적인 패착이다. 필자는 안전행정부가 주민자치라는 용어에 속아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 위원을 동일하게 본 것으로 판단한다.

 

 

명칭은 비슷할지 모르나 교육자문을 주 임무로 하는 위원회와 주민자치를 주 임무로 하는 위원회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안전행정부는 그것조차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주민자치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의 공개토론회마저 제대로 거치지 않고 주민자치 시범실시를 강행했고, 실패에도 미치지 못하는 패배를 했다.
이런 경우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경우다. 필자가 ‘주민자치로서는 방향이 완벽하게 빗나가고 시범실시로는 처절하게 실패했다’고 평가하자 학자들께서 너무 과격한 표현이 아니냐고 했다. 그에 대해 “잘못된 정책이 초래하는 참담한 결과에 비하면 매우 유순하게 누그러뜨린 것이다”라고 필자의 심정을 전했다.

 

 

표에서 관찰할 수 있듯이 주민자치센터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를 동일시하는 오류는 주민자치회를 보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됐다. 시범실시 주민자치회의 정책은 결정적으로 주민자치회를 놓치고 주민자치회 위원에게만 중점을 두고 있다. 제삿밥에만 팔려서 제사를 잊어버린 어린아이에 비유하고 싶다. 조직 면에서 살펴보면, 주민자치회에는 회(會)조직은 없고 위원회(委員會)만 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회(會)와 위원회도 구별할 수 없는 무딘 안목으로 주민자치회를 설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주민자치회는 지역의 대표조직이요, 사회의 소통조직이요, 사업의 수행조직이다. 그래서 위원회가 아닌 회(會)가 돼야 하는 것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본뜻은, 주민자치회가 읍·면·동을 대체할 수 있도록 시범으로 실시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이 요구를 정면으로 위배했다. 행정안전부는 지금이라도 시범실시 현황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중간 평가도 공개해 다양한 의견들 앞에 주민자치회의 문제를 노출시켜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옳다.
필자도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과격하게 표현한다면, 시범실시 주민자치회 정책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대로 하면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진정성과 진실성이 있는 조언은 공개행사의 폐회
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겉돌고 있을 뿐 아니라, 서울형 주민자치회 같은 괴물이 배태되는 토양을 제공하게 됐다. 행정안전부의 무지가 서울형의 무모를 낳도록 도운 것이다.

 

2017년 서울형 주민자치회
2017년에 시범실시한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더 가관이다.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는 행정기관인 읍·면·동을 대체하는 주민자치회 설치가 본령이다. 안전행정부의 주민자치에 대한 무지가 참담한 주민자치제도를 만들었지만, 어쨌든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는 읍·면·동을 대체하거나 대등하게 협력을 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인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주민자치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는 동안에 서울시는 서울형 주민자치회를 만들었다.
‘표’에서 보다시피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를 할 수있도록 자치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를 저해하는 제도적인 요인들은 그대로 둔 채 자치를 돕는다면서 주민자치지원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후진국의 법체계와 비슷하다.
국민들이 지키지 못할 법을 만들어서 옭아매어 놓고는 더러는 합법으로, 더러는 편법으로 구제를 하면서 결국은 통치를 강화하는 수법이다.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이 실질적인 자치를 할 수 없도록 만든 제도로서 권한도 인력도 예산도 없는 주민자치회는 그대로 두고, 관변단체에 주민자치회 활성화에 필요한 권력, 인력, 예산을 모두 주겠다는 것이다.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읍·면·동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 3권을 모두 장악한 관변단체의 휘하에서 복종의 의무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선불교에서는 이런 것을 거북이의 털(龜毛) 토끼의 뿔(兎角)이라고 한다. 실체가 없이 허황된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행정안전부에 바란다
지금까지 행정안전부가 수립한 주민자치제도는 현장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먼저 제도 수립 시 성공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시행하면서 성공에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지도 않았고 방향이 틀린 부분을 수정하지도 않았다. 잘못된 제도를 확산하고는 잘못을 방치한 것이다.
동일한 실패의 과정을 이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실패한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부터 다시 설계하자. 성공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자는 것이다. 학제 간의 연구로도 하고, 현장 간의 연구로도 하고, 정책간의 연구로도 하자. 머리 맞대고 힘을 보태서 한강의 기적처럼 한국의 주민자치를 일궈가는 것이 가슴벅찬 일이 아니겠는가.



 

Posted by 한국자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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